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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이 타는 가을 강-박제삼

윤탱여팬 2011. 3. 29. 22:44

울음이 타는 가을 강

                                                                      박 재 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을 보겄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가는,

                        소리죽은 가을강을 처음 보겄네.

  

   시구풀이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 : 안정되지 않고 혼란된 상태의 마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 : 인간사(人間事), 슬픔과 한의 원인임

가을 햇볕 : 슬픔을 유발하는 매개체(소멸의 이미지)

눈물나고나 : 서러움의 정서를 직서적으로 표현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 : 그 불빛은 육친의 부재(不在)를 슬퍼하고  그 육친에 대한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고 있는 것이면서, 동시에 오랫만에 일가 친척들이 모여 반가워하는 마음을 담고 있는 것임.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 이 시의 묘미는 저녁 노을이 울음으로 환치되는 상상적 변용에 있다. '가을'과 '노을'은 모두 사라져 가는 것들의 슬픔을 노래하기에 알맞은 배경이다. 따라서, 어린 시절에 겪은 슬픈 사랑의 추억과 현재의 고독과 삶이 덧없음에 대한 한을 지닌 시적 화자의 눈에는 저녁 노을에 비친 강물이 울음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시각의 청각화)

저것 봐, 저것 봐 : 저녁 노을이 물든 강에서 느끼는 경이감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 : 첫사랑의 황홀을 잘 표현한 구절, 첫사랑에 빠진 젊은 사람의 마음은 밝고 힘차다. 산골 물소리는 바윗돌 사이를 흘러 내리는 것이기에 그 또한 밝고 힘차다. 첫사랑의 기쁨을 산골 물소리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은 이처럼 양자가 동질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 끝에 생긴 울음 : 사랑의 좌절로 인한 슬픔(중년의 시대)

바다에 다 와 가는 : 완결된 물의 이미지.(노년시절의 암시)

소리 죽은 가을 강 : 울음을 삭이고 슬픔을 내면화한 한(恨)

 

   핵심정리

* 성격: 전통적, 회고적, 연상적, 주정적, 향토적, 서정적

* 특징  

   ① 판소리나 민요조의 방언 종결 어미 (-고나, -것네)로 옛스런 정감을 살림

   ② 시어의 반복과 어미 활용에 의한 울음의 점층 효과

* 표현법: 청각적, 시각적, 심상 표현, 방언적 어미의 활용

* 구성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서러움(1연)

   자연 현상으로서의 사라짐(2연)

   근원적 현상으로서의 인생의 유한성과 한(3연)

* 출전: <사상계> 1959.2

* 주제

    인간의 본원적 사랑과 고독, 그리고 무상성(無常性)

    귀향길에 바라본 가을 강과 한스러운 사랑의 실패

   

   해제

토속적인 언어와 한, 설움, 안타까움 등의 근원적인 정서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시적 화자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고향을 찾아가는 길목에서 마을 앞을 도도히 흐르는 강을 바라보면서 그에 얽힌 어린 시절의 슬픈 추억을 되살리고 있다.

  

   감상포인트

구성 : 시간의 흐름(낮→저녁), 강의 흐름(먼과거→과거→현재) → 첫사랑의 기쁨이 무거운 비애감으로 전환됨.

물과 불의 이미지 : 전체의 흐름을 슬픔과 한(恨)의 분위기로 이끌면서 서로 모순 없이 조화를 이룸

물의 이미지 : 가을강, 눈물, 산골 물, 바다

불의 이미지 : 가을 햇볕, 불빛, 해질녘

울음의 실체 : 가난하게 자랐던 생활 체험 속의 응어리와, 인간 본원의 사랑의 슬픔과 고독과 무상성(無常性)에 대한 한을 지닌 시적 화자의 눈에 저녁노을이 울음으로 보인 것

  

 박재삼

(1933- ) 일본 도쿄 출생. 고려대 국문과 중퇴. 1953년 『문예』에 「강물에서」가 추천되고, 1955년 『현대문학』에 「섭리(攝理)」, 「정적(靜寂)」이 추천되어 등단. 『60년대 사화집(詞華集)』 동인. 1974년 한국시인협회 사무국장 역임. 현대문학 신인상, 문예상, 시협상 등을 수상.

그는 일상생활에서 소재를 구하면서 비애와 한(恨)의 정서로 포착하여 그것을 유창한 언어로 노래하고 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한국시의 전통적 서정을 가장 가까이 계승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집으로는 『춘향이 마음』(신구문화사, 1962), 『햇빛 속에서』(문원사, 1970), 『천년의 바람』(민음사, 1975), 『추억에서』(현대문화사, 1983), 『대관령 근처』(정음사, 1985), 『찬란한 미지수』(오상사, 1986) 『사랑이여』(1987), 『해와 달의 궤적』(1990) 등이 있다.

  

   참고

'울음이 타는 강'에서 시적 화자는 제사를 치르기 위해 고향을 찾아가는 길목에서 마을 앞을 도도히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그에 얽힌 어린 시절의 슬픈 추억을 되살리고 있다. 그런데 이로 인해 나타나는 한의 정서는 단순히 관념화되고 보편화된 정서가 아니라, 사랑의 실패와 관련하여 시적 화자의 생활 속에 녹아 들어 있는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산등성이에서 강물을 바라보며 옛 생각에 슬픔을 참지 못하는 섬세한 감정의 흐름을 강물의 흐름과 교차시키는 시적 화자의 태도는 분명히 낭만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자연적 배경이 단순히 토속적인 정취를 불러일으키는 데 그치지 않고 개인의 삶과 세월에 대한 담담한 성장을 돕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지닌 현대적 서정의 측면을 엿볼 수 있다.

  

   참고

울음의 실체

'울음이 타는 가을 강(江)'이라는 다분히 객관 상관물적인 시 제목으로부터 비롯되는 서러움이나 울음의 실체는 이 시의 핵심적인 주제와 직결된다. 그런데 그 본체는 바로 이 시인의 가난하고 문학적이던, 시조풍(時調風)의 유년기 체험과 함께 생성된 예의 춘향(春香)과 남평문씨부인(南平文氏夫人) 및 누님의 예술적 재현인 것이다. '화상보(華想譜)'. '녹음(綠陰)의 밤에', '한낮의 소나무에', '자연(自然)', '포도(葡萄)' 같은 연작에서의 춘향과 어릴 적 시인을 사랑해 주던, '봄바다에서', '어지러운 혼(魂)', '밀물결 치마'의 가련한 남평 문씨 부인이요, 그녀의 변신(變身)일지도 모를 누님의 슬픔이나 참한 마음이 그 실체이다.

  

이렇게 박재삼 시학의 기본적인 형질을 이루는 여성적인 한(恨)이나 가녀린 정서는 그녀들 남평 문씨 부인과 춘향의 북받치는 설움들로 하여 곧잘 눈물겨운 울음으로 표출되는 것이요, 이 울음은 곧 시인 자신의 예술적인 카타르시스인 셈이다. 따라서, 박재삼 시에서의 울음은 참한 그녀들의 그것과 동질(同質)이어서, 따지고 보면 그다지 비탄일 수도 없고 저주나 오열일 수도 없는, 조촐한 정한(情恨)의 영역에서의 특별한 무상성(無常性)의 울음인 것이다. '울음이 타는 가을 강'에서의 울음도 이러한 순수하고 원초적인 인간의 본연한 사랑과 고독, 그리고 무상함에 대한 슬픔인 것이다. 이렇게 순정하고 원초적인 울음은 물질 공해와 세속에 물든 현대인의 정서나 마음 속을 닦아내고 함뿍 적셔 주는 감로수(甘露水)이거나 정화수 한 그릇일 수 있다. 이런 점에 한사코 신라나 고려 아니면 이조 여성의 정한 세계를 배회하며 재생시키곤 하는 박 시인의 희소 가치가 인정되는 것이다. 그로 하여금 소월(素月)과 영랑(永郞) 및 목월(木月)에 잇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출처 http://www.hongkgb.x-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