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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과 27일에 방영된 <선덕여왕> 제45부 및 제46부에서는 소위 '미실의 난'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여성인 덕만공주와 비(非)성골인 김춘추의 대권도전에 자극을 받은 미실이 일련의 정치조작과 쿠데타를 통해 서라벌과 왕궁을 장악하고 여왕의 길에 도전한다는 것이 '미실의 난'의 줄거리다.
가까스로 왕궁을 빠져나온 덕만은 춘추·유신·비담·월야 등과 함께 비상캠프를 차려놓고 미실에 대한 일대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일부 귀족·화랑들이 미실의 정당성에 의문을 품고 있는 데에다가 덕만 쪽의 대응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미실의 난이 성공할지 여부는 아직 누구도 예단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근거는 물론 개연성도 없는 '미실의 난'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에 묘사된 '미실의 난'이라는 것은 완전히 '새로 쓰는 역사'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어느 사료에서도 그 근거는 물론 개연성조차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실 같은 걸출한 여인이라면 한번쯤 쿠데타 등을 통해 여왕의 길에 도전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라고 질문할 수도 있다. 또는 "여걸이 일으킨 정변이라 하여, 남성 중심의 역사가들이 그것을 의도적으로 숨겼을 수도 있지 않느냐?"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사건이 있더라도, 역사가는 그것을 무턱대고 은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무턱대고 은폐하다가는 불신만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자신의 기록을 불신하는 것만큼 역사가에게 두려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들이 사실을 은폐하는 방법 속에는 '은폐의 법칙'이라고 불릴 만한 어떤 규칙이 있기 마련이다.
그 '은폐의 법칙'이란 이런 것이다. 첫째, 사건이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경우에는 사건의 발생 자체를 숨길 수 있다. 둘째, 쿠데타나 정변처럼 사건이 널리 알려진 경우에는 사건의 발생 자체를 숨겨서는 안 된다. 아니, 숨길 수도 없다. 이런 경우에는 사건의 발생을 인정하되 사건의 의미를 축소하는 접근법을 취해야 한다.
만약 '미실의 난' 같은 사건이 실제로 발생했고 김부식이나 일연 등이 그 사실을 은폐하고자 했다면, 그들은 분명히 두 번째 방법을 선택했을 것이다. 반군이 서라벌과 왕궁을 점거하고 진평왕까지 연금할 정도의 대형 사건이 발생했다면, 그런 사실을 완전히 숨기는 것은 결코 용이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은폐의 법칙'을 굳이 운운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미실의 난'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을 기록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미실에 관한 유일한 기록인 <화랑세기>에 따르면 실제의 미실은 드라마 상의 미실보다 능력이 작았을 뿐만 아니라, 노년의 미실이 중점을 둔 것은 자신의 영달이 아니라 자손의 출세였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이 범한 결정적 오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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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사극 작가가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할 필요는 없다. 실제로는 전혀 발생하지 않은 사실일지라도, 사극 작가는 그것을 실제 사실처럼 다룰 수 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상상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상의 자유를 행사하는 경우에도 사극 작가가 반드시 준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사건의 본질만큼은 절대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만약 이순신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 이순신이 일본군이 아닌 명나라 군대를 물리쳤다고 이야기를 한다면, 그런 드라마는 사극으로서의 의미를 갖기 힘들 것이다. 또 안중근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 안중근이 이토우 히로부미가 아닌 원세개(위안스카이)를 저격했다고 한다면, 이런 드라마를 사극으로 받아들일 시청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여타 부분에서는 픽션을 가미할 수 있겠지만, 이순신이 누구와 싸웠고 안중근이 누구를 저격했는가 하는 부분만큼은 절대로 훼손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다. 덕만의 왕권 도전을 다룬 드라마에서 반드시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덕만이 누구와의 경쟁 혹은 투쟁을 거쳐 왕위를 획득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점은 <선덕여왕>의 기획의도에서도 이미 표방된 적이 있다. 여타 부분에서는 상상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겠지만, 이 부분에서만큼은 상상의 자유가 크게 제약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은 바로 이 점에서 결정적인 오류를 범했다. 선덕여왕의 등극과정을 묘사하겠다는 기획의도를 표방해놓고도, 정작 그 등극과정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을 멋지게 재해석해보겠다는 장인 정신이 아니라, "40%냐 50%냐" 하는 시청률에 대한 집념만이 오로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덕만의 라이벌은 미실 아닌 용수와 승만왕후 모자
그럼,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놓쳐버린 덕만의 등극과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덕만은 누구와의 경쟁 혹은 투쟁을 거쳐 왕위에 올랐을까? <화랑세기> 제13세 풍월주 김용춘 편에 따르면, 이 과정은 크게 두 단계로 구분될 수 있다.
먼저, 제1단계. 덕만이 후계자로 지정되기 이전의 시점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단계에서 덕만이 상대한 라이벌은 진지왕의 아들이자 진평왕의 사촌인 김용수였다. 용수는, <화랑세기>에 따르면, 용춘의 형이자 춘추의 아버지였다.
고구려·백제의 공격이 본격화된 603년경에, 진평왕은 서둘러 후계구도를 결정했다. 적자(嫡子)가 없는 상태에서 자신이 혹시라도 전쟁 중에 죽게 될 경우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그는 장녀인 천명공주를 용수에게 시집보낸 뒤에 용수를 후계자로 삼았다.
그런데 이 시기에 덕만 역시 왕위를 꿈꾸었던 모양이다. '덕만이 점차적으로 제왕의 면모를 갖추었다'는 <화랑세기>의 기록은, 덕만이 왕이 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왕자도 아닌 공주가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제왕의 면모를 갖추었을 가능성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결국 진평왕은 제왕의 면모를 갖춘 인물인 동시에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친딸인 덕만을 후계자로 선택했다. 그리고는 용수-천명 부부를 왕궁에서 내보냈다. 이는 덕만이 용수를 상대로 선의의 경쟁을 벌였고, 이 경쟁에서 덕만이 승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승만왕후 모자와 '투쟁' 뒤 왕위에 오른 덕만
다음으로 제2단계. 덕만이 후계자로 지정된 이후의 시점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단계에서 덕만이 상대한 라이벌은 새엄마인 승만(僧滿)왕후 모자였다. 덕만의 어머니인 마야왕후는 덕만이 후계자가 되기 전에 사망했다. 그 뒤를 이어 왕후의 자리에 오른 여인이 바로 승만왕후였다.그런데 승만왕후가 아들을 낳음에 따라, 덕만과 승만왕후 모자 간에 자연스럽게 갈등관계가 생기게 되었다. 승만왕후가 자기 아들을 후계자로 만들려 했을 것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덕만 대 승만왕후의 관계는 광해군 대 인목대비의 관계와 유사했다고 볼 수 있다.
덕만의 입장에서 볼 때에, 제2단계는 제1단계에 비해 훨씬 더 힘든 과정이었다. 제1단계에서 덕만은 용수와의 대결을 아름답게 끝냈다. 덕만이 용수를 제치고 후계자가 된 뒤에도 이들의 관계는 나빠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용수의 동생인 용춘은 계속해서 덕만을 보좌했고, 용수의 아들인 춘추 역시 훗날 덕만을 충실히 보좌했다. 덕만과 용수의 대결이 추하게 종결되었다면, 이런 아름다운 일이 발생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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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제2단계는 결코 아름답게 끝나지 않았다. 이것은 경쟁이 아니라 투쟁이었다. 왜냐하면, '피'를 보았기 때문이다. 승만왕후가 낳은 아들, 다시 말해, 덕만을 제치고 왕위에 오를 가능성이 있는 왕자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만 것이다.
왕자가 죽은 뒤에 승만왕후가 덕만의 정치참모인 용춘을 미워했고 이로 인해 용춘이 지방으로 좌천되었다는 기록을 볼 때에, 용춘이 왕자의 죽음과 모종의 관계가 있었으리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덕만의 핵심참모인 용춘이 사건에 연루되었다면, 덕만 역시 어떤 형태로든 그 사건과 관련이 있으리라고 보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승만왕후의 몸에서 태어난 왕자가 죽지 않고 성장했다면, 여자인 덕만의 왕위계승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왕위에 오르기 위한 덕만의 제2단계 투쟁에서 그 왕자는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이로써 덕만의 왕권 가도에 장애가 될 만한 주요 인물들이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덕만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상대한 실제의 라이벌은 용수 및 승만왕후 모자였다. 덕만이 미실과의 투쟁을 거쳐 왕위에 올랐다는 것은 그저 드라마 속의 허구일 뿐이다. 그러므로 덕만의 왕권도전을 다룬 드라마라면, '덕만 대 용수'의 대결과 '덕만 대 승만왕후 모자'의 대결을 반드시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덕만의 왕권도전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제대로 소개해주지 못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마치 '팥소 없는 찐빵'을 먹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