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

정조는 소심한 안경잡이

윤탱여팬 2009. 11. 27. 17:09
정조는 소심한 안경잡이
[매거진 esc]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극
한겨레
» 이탈리아 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체냐'의 안경(위)과 선조시대 문인 학봉 김성일의 안경.
화들짝 놀라 눈알이 튀어나오고 눈에서 별이 치솟아 오르고 눈알이 뱅글뱅글 원을 따라 돌기도 한다. 눈매의 과장은 만화에서 변화무쌍한 주인공의 감정심리를 희화화하는 데 자주 동원되는 기법이다. 주인공이 제정신이 아닐 때 그 눈을 보는 독자들의 동공도 같이 희번덕거린다. 그만큼 눈은 세상을 다르게 혹은 제대로 보게 하는 수단이다. 없어서는 안 될 결정적인 신체기관이다. 눈에 콩깍지가 씌거나 눈이 삐거나 하는 무수한 표현들도 빠짐없이 ‘눈’의 모양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흥미로운 것은 눈만큼이나 수많은, 또 엉뚱한 ‘안경’ 디자인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시력을 교정해주고 이미지를 바꿔도 주는 안경이란 참으로 기이하다.

지금은 현대인의 무표정한 사물이 되었지만 애초 안경은 놀라운 발견이었다. 이탈리아의 누군가가 13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만들었다느니, 마르코 폴로가 동방을 견문하며 요상한 안경 꼴에 대해 적었다느니, 최초의 두 알 안경은 압정으로 고정했다느니, 채 마침표를 찍지 못한 역사적 이미지들이 떠다닌다. 확인할 수 있는 웃지 못할 사실들도 많다. 조선의 왕 정조는 시력이 나빠 안경을 쓰고 조정에 나가면 신하들이 실망하지 않을까 고민하는 소심남이었다. 고종은 근시로 시달리는 아들 순조가 안경을 쓰면 혼쭐을 냈고, 한 신하는 왕 앞에 안경을 쓴 자책감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력을 교정해주는 기능보다는 안경에 관한 ‘예법’에 관심이 있던 조선의 안경잡이들. 그렇다고 그들이 멋과 디자인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1889년 미국인 선교사 제임스 게일은 “눈에 굉장히 큰 원형의 흑색 수정구 2개를 걸고 다니는데 멋을 내느라 끼고 다니는 것” 같다고 적었다.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안경으로 알려진 학봉 김성일의 안경을 봐도 그 멋이 감지된다. 선조시대 문인으로 명나라와 일본에 다녀왔던 그는 안경에 구멍을 내고 실이나 리본을 매달아 귀에 고정시키는 ‘실다리 안경’을 착용했다. 수정구슬 등을 안경알로 사용했던 터라 정확한 시력 보정이 얼마나 가능했는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거북 등껍질을 이용한 동그란 안경테와 푸른빛이 감도는 리본은 결코 촌스럽지 않고 아방가르드하기까지 하다. 사용자의 손때 묻은 유일무이한 디자인이자 공예품으로서의 가치도 묻어난다. 가벼운 피나무로 만들어진 안경집은 겉만 검은색으로 단정하게 옻칠되어 있고 구름 모양의 안경 코 부분은 청화백자의 목 부분을 닮아 있다.

광학기술의 발전과 안경테 등의 다양한 변신으로 안경은 멋쟁이들의 독특한 기호품으로 자리잡았다. 오페라 안경, 외알렌즈 안경 등 유럽 상류사회가 만들어낸 다양한 안경 디자인은 표범 무늬의 선글라스, 무테안경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안경의 대중적인 스타일에 녹아들었다. 요새 값비싼 안경들은 평범해 보이지만 그것을 세련미이자 도시 스타일이자 절제라는 이름으로 승화하기도 한다. 이탈리아 브랜드인 ‘에르메네질도 체냐’는 검정부터 은은한 컬러의 동그스름한 뿔테 안경을 새롭게 내놓았다. 김구 선생에게도 어울릴 법한 시간의 격조가 느껴지는 디자인이다. 시력이 나빠 세상을 선명하게 보고 싶은 마음과 내가 좀더 멋스럽게 보이고 싶은 욕구가 ‘눈 거울’(안경)에는 뱅글뱅글 혼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