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

"日警에 홀로 맞섰던 임정복 열사를 기억합시다"

윤탱여팬 2010. 8. 12. 09:32

"日警에 홀로 맞섰던 임정복 열사를 기억합시다"

연합뉴스 | 입력 2010.08.12 08:38 | 수정 2010.08.12 08:39

 
해방직후 일본경찰 치안권 행사에 분노, 경찰서 쳐들어가 순국

통영주민 경찰서 점거 항쟁 '도화선'.."숭고한 애국심 잊지 말아야"

(통영=연합뉴스) 임형섭 기자 = "단신으로 일본 경찰에 맞서다가 순국한 임정복 열사를 아시나요."

경남 통영시 향토역사관의 김일룡 관장은 최근 1945년 해방 직후 경남 통영의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 원본 38점을 공개했다.

독립을 축하하는 시가행렬 장면이 주를 이룬 가운데, 태극기를 몸에 두른 한 인물의 시신과 장례식 모습을 담은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12일 만난 김 관장은 "사진 속 인물은 일본 경찰에 맞서다 순국한 임정복 열사로, 해방 직후 통영 시민들이 일본 경찰들을 몰아내고 경찰서를 점거하는 사건의 도화선이 된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김 관장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임 열사가 순국한 것은 1945년 9월 29일.

당시 그의 나이는 22세였다.

일본군에 강제징병돼 훈련소에 입소했다가 해방을 맞아 고향 통영으로 돌아온 그는 패전선언 후에도 일본 경찰이 경찰서에 주둔하며 치안권을 행사하는 데 크게 분노했다고 한다.

지인들에게 "우리나라가 독립국이 됐으니 일본 경찰들에게 우리 땅에서 떠나라고 하겠다."는 말을 남긴 채 홀로 경찰서로 쳐들어갔던 임 열사는 다음날 옆구리를 총검으로 찔린 채 시신으로 발견됐다.

열사의 순국을 지켜본 시민들은 크게 분노했다.

100여명의 시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경찰서로 몰려가 일본 경찰들을 힘으로 제압해 무기를 빼앗고 그들을 구치소에 잡아 가뒀다.

10월 3일에는 임 열사의 장례를 대대적인 '시민장'으로 치렀는데 이는 통영 최초의 시민장으로 기록됐다.

이 사건으로 통영의 치안권은 잠시나마 시민들 손으로 넘어왔지만 10월 10일 미군이 통영에 들어와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시민들은 경찰서 점거를 풀게 된다.

당시 시민들이 경찰서로 몰려가는 모습이나 장례식에서 열사의 죽음을 슬퍼하는 모습, 미군이 통영에 들어오는 모습 등도 이번에 공개된 사진에 생생히 기록돼 있다.

김 관장은 "경찰서 점거 사건은 시민들이 스스로 독립을 쟁취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가 크다"며 "이 항쟁을 가능하게 한 임 열사의 순국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시간이 흘러 열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나면서 이 사건이 거의 잊혀가고 있다."며 "이번에 공개한 사진이 열사의 숭고한 애국심을 재조명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