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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금속활자' 공개… 진위 논란 中

윤탱여팬 2010. 9. 4. 15:22

'13세기 금속활자' 공개… 진위 논란 中


2일 다보성고미술전시관에서 남권희 교수가 13세기에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금속활자를 설명하고 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목판본과 서체 일치" 對 "과학적 증명 방법 없어"

'직지'보다 최소 138년 앞서 현존 最古 금속활자 주장

탄소연대 측정 불가능… 활자 입수 경위도 불분명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인쇄물인 직지심체요절(1377년 간행)보다 최소 138년 이상 앞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금속활자의 실물이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운동 다보성고미술전시관에서 공개됐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주최측은 12점의 금속활자에 대해 제기된 의문점들을 명확하게 해명하지 못하고 "앞으로 적극적으로 학계의 검증 절차를 밟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이들 금속활자가 13세기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남권희 경북대 교수(서지학)는 활자들이 고려 고종 26년(1239년) 간행된 목판본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보물 758호)'와 서체·크기가 같다는 점을 주요 근거로 제시했다. 특히 '明(명)'자의 경우 요즘 쓰지 않는 고자(古字)로, 서체와 획의 삐침 등이 목판본의 글자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은 "금속활자를 본떠 새겼더라도 목판본은 각공(刻工)의 손을 거치면서 왜곡되기 쉽기 때문에 목판본을 비교 대상으로 한 것은 문제"라며 "활자를 종이에 찍어보지 않고 비교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속활자들의 크기는 가로 1.2~1.5㎝, 세로 1~1.3㎝, 두께 0.1~0.7㎝이고 무게는 4.3~4.9g이었다. 비파괴분석 결과 성분은 구리 40~80%, 주석 25~38%, 납 22~32% 등으로 나타났다. 남 교수는 "구리의 함유량은 대체로 40~50%였는데, 이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고려시대 금속활자 '복'자와 비슷한 수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금속활자의 제작 시기를 과학적으로 증명할 방법은 거의 없다. 이날 공개에 참석한 이오희 한국전통문화학교 석좌교수는 "금속은 탄소연대 측정이 불가능하고 활자에 남아 있는 먹을 긁으면 탄소연대 측정이 가능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먹의 양이 많지 않고 금속활자의 청동 표면이 손상될 위험이 있어 이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금속활자들의 입수 경위도 여전히 불분명했다. 남 교수는 이날 "일제 강점기에 개성에서 출토된 것"이라고 새로 밝혔지만 그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