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 수
정 지 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둘러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시구풀이
♣ 옛 이야기 ~ 휘돌아 나가고 : 고향의 경치에 대해 가지는 시적 화자의 정다움(의인법)
♣ 지줄대는 : '지절대는'의 사투리. 거침없으면서도 다정하고 나긋나긋한 소리를 내는
♣ 해설피 금빛 ~ 우는 곳 : 공감각적 심상. 봄의 정경을 감각적으로 묘사
♣ 해설피 : 느릿느릿하고 길고 슬픈 느낌을 주는 소리를 이름.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설의법. 고향에 대한 그리움 강조. 주기적 반복을 통한 그리움의 강조. 각 연의 시상을 정돈해주고 반복을 통해 형태적 안정감에 기여하고 있다.
♣ 질화로 : 진흙으로 구워서 만든 화로.
♣ 비인 밭에 ~ 달리고 : 한밤중에 황량한 밭을 가로지르는 바람소리의 공감각적 심상, 활유법
♣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 미래에 대한 순박한 소망을 나타낸 구절
♣ 풀섶 : 풀이 많이 난 곳, '길섶'은 길 가장자리, 길가.
♣ 함초롬 : 가지런하고 고운 모양. 모자람 없이 알맞게 담뿍.
♣ 휘적시던 : 마구 적시던
♣ 전설 바다에 ~ 어린 누이와 : 전설이 깃든 바다에 춤추는 듯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모습을 통해 검은 머릿결을 가진 어린 누이의 사랑스럽고 신비한 이미지 표현
♣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 ‘아내’의 평범함을 암시. 가족 공동체에 대한 향수
♣ 사철 발 벗은 아내 : 소박하고 가난한 아내와 가족의 표현
♣ 따가운 햇살을 ~ 줍던 곳 : 노동하는 공간으로서의 고향
♣ 서리 까마귀 : 가을 까마귀. 가을에 서리 내릴 때 모여드는 까마귀.
♣ 서리 까마귀 ~ 도란도란거리는 곳 : 가을 밤의 정겨운 풍경
해제
이 시는 농경 시대 한국인의 고향을 노래하고 있다. 홀 수 연은 고향의 잊을 수 없는 심상을 제시하고 있고, 짝수 연은 후렴구로서 동어 반복을 통해 잊을 수 없는 감정을 강조하고 있다. 날로 비인간화되어 가는 현대인들에게 옛 고향의 정취에 젖어들도록 하는 시이다.
핵심정리
* 어조; 그리움의 목소리, 애틋한 어조
* 성격; 감각적, 향토적, 회화적, 묘사적
* 표현
토속적인 시어로 향토적 정감 표현
후렴구를 통한 그리움의 정조 환기
선명한 감각적 심상으로 고향의 정경을 형상화함.
감각적 이미지가 두드러지며 후렴구의 반복으로 이미지의 통일성 확보
* 출전: <조선지광> 65호, 1927. 3
* 주제; 고향에 대한 그리움, 향수
감상포인트
▶ 시상 전개 : 풍경(가을) → 가족(겨울) → 어린 시절(봄) → 가족(여름) → 풍경(가을) (3연의 애틋한 그리움을 중심으로 그리움이 상승과 하강을 하는 구조)
▶ 이미지 : 향토적 정서와 서구적 이미지즘의 조화. 일제 치하에서 존재 근거를 상실한 민족의 잃어버린 공간 회복의지를 세련된 감각으로 노래함
▶ 정서 : 넓은 벌, 실개천, 얼룩배기 황소 등 전원적이고 향토적인 이미지를 통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 매연 마지막 행에서 반복되는 영탄의 목소리
귀향 의지 표현
과거로의 귀환(유년기의 꿈에 대한 강한 애착)
▶ 후렴구의 반복의 효과
선명한 심상의 제시
단일한 인상 부여
그리움의 고조
운율감
감정의 반복
▶ 동일 시행을 반복 사용함으로써 얻는 효과 : 이미지의 통일성을 가져오고 음악성을 살리며 그리움의 정서 강조
▶ 이 시가 독자에게 공감을 주는 이유 : 고향의 정경을 이미지화하여 '향수'라는 인간의 근원적 정서를 표출함
정지용(鄭芝溶, 1902.5.15 ∼ 1950.9.25)
1902년 충북 옥천(沃川) 출생.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를 졸업. 귀국 후 모교의 교사, 8·15광복 후 이화여자전문 교수와 경향신문사(京鄕新聞社) 편집국장을 지냈다. 6·25전쟁 때 북한공산군에 끌려간 후 사망. 이상(李箱)과 조지훈(趙芝薰)·박두진(朴斗鎭)·박목월(朴木月) 등의 시인을 등단시킨 공로가 있다. 작품으로는 시 《향수(鄕愁)》 《압천(鴨川)》 《이른봄 아침》 《바다》 등이 있고, 시집 에는《정지용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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