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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 2009 vs. 2010

윤탱여팬 2010. 1. 1. 11:46

Special | 2009 vs. 2010_ 글 : 장우철 (GQ KOREA 피처 디렉터) / 구성 : 네이버 뮤직

2009년 한국 대중음악은 화려하고 요란했다. 보기에 그랬다. 이유는 세 글자로 요약할 수 있다. '아이돌'. 그럼 듣기엔? 한 곡 지나면 또 한 곡, 히트곡은 무슨 메들리라도 되는 것처럼 연신 튕겨 나왔지만 노래마다의 개성보다는 그것을 보여주는 가수마다의 생김생김이 더 두드러졌달까? 확실히 듣는 재미는 좀 덜했다. 혹은 보는 재미에 묻혀 듣는 재미가 반감된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는 사이 간판 하나 달지 못하고 혼자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 아마츄어 증폭기 같은 아티스트도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 대중들이 앉은 자리에서 그냥 알긴 어려웠다. 영미권 팝 신에서는 노장들의 역작이 쏟아진 한 해였지만, 여기서는 체면치레는 고사하고 노래를 발표하기조차 힘든 상황으로만 치닫는 시간이었다.

아이돌과 아이돌이 아닌 음악, 둘 사이에 무슨 먹고 먹히는 관계라도 성립한다면 차라리 속 편할까? 예를 들어 쇼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아이돌 가수 숫자를 하나 줄이고 거기에 대신 인디 밴드를 하나 집어 넣는 식으로. 하나 마나 한 웃긴 소리다. 빤한 수작일 뿐이니까. 그런 건 필요가 없다. 자, 2009년이 끝나고 새해가 시작된다. 2010년엔 2009년과 비교해 무엇이 어떻게 될는지 한껏 생각하고 상상한다. 희망이라 한들 그 무엇이라 한들 일단은.

Round.1 | 아이돌은 영원하리니 - 2009년의 아이돌 vs. 2010년의 아이돌

2009년의 아이돌
2009년 초만 해도 동방신기와 빅뱅과 원더걸스와 소녀시대 막강 4강 구도였던 아이돌 판은 순식간에 다른 모드로 전환되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2PM의 맹활약이었다. 'Again & Again'과 '니가 밉다'로 연타석 홈런을 날리며 단박에 정상을 탈환한 2PM은 '에너지'라는 측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면모를 거의 과시하다시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리더인 재범의 기약 없는 팀 탈퇴가 사회적 이슈로 번지면서 그 이름이 가진 대중적 파급력을 보다 세게 만들기도 했고 말이다. 이어서 발표된 신곡 'Heartbeat'의 어딘지 긴장되고 매서운 공기는 2PM을 주목한 이들에게 타당한 해답 같은 노래로 다시 그들을 정상에 올려 놓았다. 원더걸스가 미국에서의 활동을 모색하느라 텔레비전에서 사라지고, 동방신기가 해외 활동 쪽에 주력하다 기획사와의 송사에 휘말리고, 빅뱅이 일본 활동과 멤버 솔로 활동 등 다른 색깔을 보여주는 쪽으로 진행되는 동안, 기존 4강 구도 중에선 유일하게 소녀시대만이 두 곡의 대형 히트곡을 내며 2PM과 함께 2009년 아이돌 스타의 정점에 섰다.

 

한편 카라는 점점 (어설픈) '스타일리시'나 (어리석은) '음악성' 쪽으로 몰려가는 아이돌 판에 본래 아이돌 스타란 어떤 모양새인지를 일러주는 어여쁜 이정표로서 간담이 서늘하도록 멋진 팝송을 선사했고, 샤이니는 ('한 방'이 아쉽긴 했지만) 출중한 실력이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평가까지 받으며 입지를 다졌다. 그리고 2NE1은 들을수록 매력적인 최고의 노래를 발표하면서 '요즘 잘 나가는 애들'에 대한 최후의 표상처럼 멋졌고, 지드래곤은 잘 다듬어진 솔로 앨범을 발표하면서 막강한 아이돌 팬덤을 이끌었다. 동시에 불거진 몇몇 논란은 이치나 결과를 따지기 전에, 당대를 대표하는 문제적 스타라는 그의 존재감을 확인시켜주면서 점점 미래를 궁금하게 만들기도 했다.

2010년의 아이돌
2009년이 그랬듯 2010년에도 아이돌 판은 화려하고 복잡하고 천장보다 드높은 볼륨을 자랑할 것이다. 1월 말, 우선 빅뱅이 대규모 콘서트를 열면서 오랜만에 빅뱅봉 흔드는 팬들의 대동단결을 도모할 태세를 마쳤으니, 이건 숫제 초장부터 아이돌 판이 제대로 벌어지는 셈 아닌가. 얼마 전 화제 만발의 콘서트를 성황리에 치른 소녀시대와 미국에서의 활동과 성과를 안고 돌아온 원더 걸스의 본격 대결이 시작될 경우, 그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청자라 할지라도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데뷔 신고를 마친 비스트, 엠블랙, f(x) 같은 팀이 당장 2010년에 어떻게 될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2008년 연말에, 2PM이 1년 후 지금과 같은 위상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예측하는 것이 어려웠던 것처럼 말이다. 재범의 컴백이라는 초미의 관심사를 항시 내재하고 있는 2PM은 그렇게 뇌관을 노출시킨 채 무대 하나하나를 긴장된 순간으로 만들 것이다.

 

생각 같아선 은근히 데뷔 시기가 비슷해 라이벌처럼 취급되는 샤이니와 어떤 의미에서든 혹은 정황에서든 대결 구도가 확실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로 친합니다" "응원합니다" "음악적 방향이 완전히 다르잖아요" 같은 귀엽고 지루한 멘트는 얼마든지 들어줄테니, 다만 불꽃이 튄다는 것이 뭔지 젊은 남자들이 무대에 서서 보여줄 수 있는 극한까지 밀어붙인 장면들을 경험하고 싶다. 그것이 과연 서로를 위한 발전적인 경쟁의 표상 아닐는지. 2NE1과 카라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너무 다르지만 2009년에 했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서 더욱 단단한 형식으로 무장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더 세련되게, 더 예쁘게. 그런 폭격 같은 한바탕 소용돌이 속에서 어떤 순수한 결정을 얻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태양의 정규 앨범 [Real]에 거는 기대엔, 그렇게 생각지도 못했던 바깥으로부터의 침입이 아니라, 주류 음악 판의 진앙에서 곧장 송출된 음악이라는 가치가 덧대어져 있다.

Round.2 | 진정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가? - 2009 '아이돌이 아닌' 음악 vs. 2010 '아이돌이 아닌' 음악

2009년의 '아이돌이 아닌' 음악
오래되고 익숙한 것은 낡아 버려질 것으로 치부되기 쉽다. 비단 음악뿐만 아니라 가수의 얼굴에도 그런 관점은 단도직입 들이닥친다. 신선하고 낯선 매력으로 가득한 얼굴이 아니라면, 우리는 연륜이나 무거움이나 깊이 등에 쉽게 고개를 돌리고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대중음악 판에서 오래된 것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건 가을이나 겨울에 들을 단 한 곡의 발라드 정도다. 돌이켜보건대, 유희열과 김동률과 이적 같은 싱어송라이터들이 좋은 반응을 얻었던 2008년은 싱어송라이터의 부상이 아니라 다만 유희열과 김동률과 이적의 팬 층이 지닌 시장에서의 파워가 드러난 것이었다. 특별한 현상이었던 장기하의 경우는 그 인기에 장기하라는 캐릭터가 진했으나, 장기하의 음악이 품고 있거나 파생시킬 수 있는 것에 대한 요구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는 평가도 가능 할 것이다(여기서 장기하의 음악에 대한 평가는 별도다).

 

2009년, 그야말로 모든 걸 다 혼자서 부르고 연주하고 제작해 판매까지 한 아마츄어 증폭기는 [수성랜드]라는 빛나는 앨범을 선보였지만 지금 다수의 대중음악 청자가 원하는 '이슈'로부터는 수성만큼이나 멀리 있었다. 심지어 음악깨나 듣는다는 평단의 관심으로부터도 멀었다. 이소라의 7집과 오소영의 2집과 오지은의 1집 같은 좋은 앨범이 결국 '그들만의 리그'를 벗어나지 못한 것은 그 음악을 취급할 만한 체계가 여기에 없기 때문이다. 슬픈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나마 승자는 '파는' 사람이 아닐까? 상황을 돌파하고서라도 팔 줄 아는 사람 말이다.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이승철의 아름다운 보컬이 '고작' 그런 노래로만 빛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대중은 얼마나 될까? 아마도 소수의 사람만이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의, 이 노래가 저 노래 같고 저 노래가 이 노래 같은, 반복되는 신곡 꾸러미를 들으며 탄식할 뿐(또한 노래 하난 진짜 기가 막히게 잘 하는데 탄성을 낼 뿐), 정작 본인도 '대중이 원하는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식의 논리가 아닐까 싶다. 유감스럽게도 이것도 어딘지 슬픈 얘기다.

2010년의 '아이돌이 아닌' 음악
2010년에 설사 천지가 개벽한다 해도 아이돌 위주로 구획된 대중음악 판의 철옹성은 끄떡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모든 충고는 사심이 되고, 모든 가치는 평가로서만 가능할 것이며, 모든 노래가 자신만의 땅을 딛고 서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애당초 어디 땅이 있어야 딛거나 서거나 할 것 아닌가. 대중음악 판에서 아이돌이 아닌 음악이 대중적으로 성공하는 장면은 마치 콘크리트 벽 사이에 홀연히 자란 풀을 보는 느낌과 같다. '저게 어떻게 저기서 싹을 틔우고 잎을 펼쳤을까. 신통하다 신통해.' 그러고 마는 것. 지금 이상은은 세상에서 가장 솔직하고 단순한 방식으로 새 앨범을 녹음하고 있다. 그녀는 단지 그러고 싶어서 친구들과 뉴욕에 갔고, 거기서 마음을 엮으며 아티스트의 텅 빈 노트를 그 도시의 호흡으로 채워 나가고 있다. 어쩌면 2010년 우리는 그 기록을 앨범으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지난 앨범에서 '삶은 여행'이나 '좁은 문' 같은 아름다운 노래를 천천히 곱씹을 기회를 가지지 못했던 것은 누구나의 손해가 아니었을까?

 

이상은의 경우에서 보듯이 아이돌이 아닌 음악의 핵심은 과연 가수가 하고 싶은 대로 한 것인가라는 점이다. 시장 친화적으로 철저히 기획된 아이디어에 가수가 스스로를 낮추거나 높여서 뭔가 끼워 맞춰 만들었다면 그게 아이돌 음악과 근본적으로 다른 게 뭘까? 가수의 지금을 표현한 진심이 있는가 하는 문제, 아주 단순하고 비범한 문제. 밤이슬 같은 음성의 정훈희는 언젠가 사담 중에 자신은 지금도 무슨 노래든 맡기기만 하면 다 할 수 있다고 심지어 랩도 잘 할 수 있다고 우스개를 했다. 그녀가 랩을 하고 싶다면 랩을 하면 된다. 단 정훈희가 랩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보도자료가 아니라 그 노래를 통해 들려야 할 것이다. 그런 이치다. 그런 진심을 맛보고 싶다. 어떻게 보이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진심. 그게 있다면 무엇이 반갑지 않을 수 있을까? 언제부턴가 우리는 더이상 새로운 조용필의 히트곡을 만나지 못하는 시대를 살게 되었다. 2010년에 그의 노래가 막무가내 순위프로그램에서 1위를 하는 장면을 본다면 정말 여한이 없을 것 같은데...

Epilogue | 자신의 취향에 좀 더 솔직하게 다가서기를...

혹자는 고개를 흔들 것이다. 그러니까 텔레비전 모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 발표를 할 때 무대 위로 전 출연자가 올라와 있는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자신의 무대에서 선보였던 세상에 둘도 없는 자신감과 자존감과 열정은 대기실에 두고 나왔는지, 그저 세상에서 가장 어린 소년소녀 집단 정도로 보이는 문제적 장면 말이다. 순위라는 게 명명백백한 근거나 어떤 역사적인 위상을 갖지 못하는 이상 반복될 수밖에 없는 장면이 지금 한국 대중음악 판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그러니 인상은 현상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음악 판이 완전히 애들 노는 판이구나.'

장점도 많다. 무슨 소리, 훌륭하기만 하다. 그러니 거기서 같이 놀 거라면 그저 즐기면 된다. 대중음악을 듣는 것은 결국 나와 타인의 같거나 다른 취향일 뿐이니 즐기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거기서 마냥 놀고 있는 것이 왠지 거북하다면? 다시 원점이다. 부디 많은 청자들이 자신의 취향에 좀더 솔직하게 다가서고 그것을 적절한 소비든 관심이든 그 무엇으로라도 표현하려는 태도가 성숙하는 2010년이길 바란다. 사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누군가는 비슷한 말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얘긴 언제나 좀 멋쩍다. 어쩌다 보니 또 했다.

LInk | 대중음악 라이벌 열전 'VS 뮤직 스토리'의 지난 주제들

비스트 vs. 엠블랙
계절은 차가운 겨울을 향해 흐르지만, 대중음악 기관차는 11명의 소년들과 함께 더욱 뜨겁게 달려갑니다. 새로운 아이돌 에너지인 비스트와 엠블랙을 만나봅니다.


이승기 vs. 태양
노래와 연기 모두 인정 받으며 최고의 스타의 거듭나고 있는 이승기와 뛰어난 가창력과 함께 훌륭한 무대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태양. 서로의 영역에서 아름다운 두 청년을 만나봅니다.


휘성 vs. 나얼
한국 R&B의 대표 주자 나얼과 휘성.
언제나 기대 이상을 보여주는 두 사람의 아름다운 노래를 만나봅니다.


보이 그룹 vs. 걸 그룹
바야흐로 아이돌 전성시대. 각각의 매력을 어필하며 팬들의 사랑을 얻기 위한
보이 그룹과 걸 그룹들의 남다른 어필 포인트를 살펴봅니다.


쿨 vs. 코요태
시간이 지나도 오래 기억에 남아 다시 찾는 노래들이 있습니다.
변함없이 빛나는 90년대 혼성그룹 쿨과 코요태를 만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