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

융천?

윤탱여팬 2011. 6. 11. 23:57

역시나 ‘융’을 찾던 중 알게(?) 된 융천 이라는 인물을 조사해보려고 한다.

융천[融天]은 생몰년 미상의 신라 승려이며 향가 작가이다.

융천 또는 융천사라고 하는데 어차피 스승 사(師)라 별 상관은 없다.

다음은 삼국유사 권5에 나오는 융천에 관한 부분이다.


진평왕 때 제 5 거열랑, 제 6 실처랑, 제 7 보동랑 등 세 화랑의 무리가 풍악 을 유람하려 하였는데, 혜성이 심대성을 범하였다. 낭도들은 이에 괴이하게 여겨 유람하는 것을 그만두려 하였다. 이 때 융천 스님이 노래를 지어서 그 노래를 부르니 별이 기이하게도 곧 사라졌고, 일본 의 병사들이 그들의 나라로 돌아가 반대로 복된 경사가 되었다. 대왕은 매우 기뻐하며, 낭도들을 풍악(금강산)에 유람하게 하였다.


여기서 융천이 지었다는 노래는 혜성가 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원문


舊理東尸汀叱 

乾達婆矣游烏隱城叱 兮良望良古

倭理叱軍置來叱多

烽燒邪隱邊也藪耶

三花矣岳音見賜烏尸聞古

月置入切爾數於將來尸波衣

道尸掃尸星利望良古

彗星也白反也人是有叱多

後句 達阿羅浮去伊叱等邪

此也友物比所音叱 兮叱只有叱故


현대어 풀이


옛날 동쪽 물가에서

건달바 의 놀았던 성을 바라보고

왜 군이 왔다

횃불을 사르라 변방의 무리여

세 화랑이 산을 보려함을 듣고

달도 밝게 불을 켜는 바에

길을 밝히는 별에

혜성에게 사뢴 사람 있다

달아 떠 있어라

이런데 무슨 혜성이 있겠느냐.


융천이 노래를 불렀는데 왜군이 물러갔다는 내용이다. 혜성가의 창작 연대에 대해서는 602년설, 623년설, 594년설, 607년설 등이 제시되고 있다.


한편, 이 내용으로 융천을 불교우주관에 입각한 점성가로 해석하면서, 인명이 아닌 천(天)에 밝은 특수기능자, 즉 기능직명으로 보려는 견해도 있다.


마지막으로 이 향가도 같이 올린 이유는 융천의 대표작이기도 하고,

아직 조금 남았지만 삼국유사 대회 준비도 하고,

어차피 고등학생이므로 고전시가 공부도 해야 돼서.


그럼 망글 싸지르고 나는 갑니다. sor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