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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불황이 낳은 드라마 속 자화상

윤탱여팬 2009. 12. 13. 14:43
경제불황이 낳은 드라마 속 자화상


우리는 때때로 TV를 보며 울기도 웃기도 화를 내기도 한다. 가끔은 ‘말도 안 된다’고 비판하면서도 현실과 다른, 그 꿈 같은 이상(연예인)에 빠져 들고 만다. 특히 불황일수록 대중은 각박한 현실 세태를 보기 보다 판타지(Fantasy)적인 이야기와 자극적인 소재를 찾기 마련이다. TV 속에서만이라도 현실과 다른 행복한 공간 및 아름다운 연예인을 보는 대리만족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이다. 결국 대중의 관심을 얻기 위한 2009년 연예계는 치열하게 이 ‘판타지’를 쫓았다. 올 한해 드라마와 예능, 가요계에 나타난 ‘판타지’적 성향을 되짚어 봤다. <편집자 주>

[방송가 총결산] ‘판타지’를 쫓은 2009 연예계(종합)

[방송가 총결산①] 경제불황이 낳은 드라마 속 자화상

[방송가 총결산②] 리얼예능과 집단토크의 양면성

[방송가 총결산③] ‘엉덩이춤’ ‘꿀벅지’…그 성적 판타지

[TV리포트 조우영 기자] 경기가 어려운 때는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큰 법. 지난 해부터 이어진 경제 불황이 가져온 올 한해 인기드라마의 코드는 ‘현실 도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씁쓸한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 - ‘꽃남’, ‘내조’, ‘찬유’

올 상반기 '꽃남 신드롬'을 일으키며 화제를 모았던 KBS 2TV ‘꽃보다 남자’가 대표적인 경우다. ‘꽃보다 남자’는 ‘F4’라는 잘생기고 돈 많은 남자주인공 4명을 내세움으로써 순정만화(원작)다운 설정과 비현실적인 이야기 구조로 시청자들에게 판타지를 심어주었다.

10대에게는 학교 밖 일탈이 주는 해방감을, 20~30대 여성들에게는 재벌 2세와의 사랑을 통한 신분 상승이라는 전통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로 눈길을 사로잡으며 평균 25% 이상의 높은 시청률을 유지했다.


'꽃보다 남자'의 인기를 이어받은 MBC ‘내조의 여왕’은 남편의 출세를 위해 발벗고 나선 아내의 이야기를 발랄하게 그려 호평을 받았다. 김남주가 연기한 천지애는 억척스러우면서도 코믹한 캐릭터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씁쓸한 우리네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공감을 자아냈다. 실직한 남편과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해 손이 닳도록 ‘짝퉁’ 가방을 만드는 아내, 취직을 위해 상사에게 무릎을 꿇는 모습까지. 얼마나 비현실적이었느냐는 시청자들의 기준에 따라 달랐다.

‘착한 드라마’로 평가 받는 SBS ‘찬란한 유산’ 역시 따지고 보면 온갖 역경을 딛고 성공과 사랑을 얻는 여주인공의 이야기다. 물론 남자 주인공은 돈 많은 ‘훈남’이다. ‘유산’ 문제로 갈등이 유발된 한 가족을 ‘완소녀’ 한효주가 변화시키는 과정은 사실 지극히 비현실적이면서도 우리 모두가 원하는 가슴 따뜻한 드라마였다.

# 제작비 절감이 불러온 ‘막장’- ‘유혹’, ‘차차차’ ‘수삼’

경기 불황은 안타깝게도 드라마의 제작환경까지 바꿔 놓았다. 드라마 제작사들은 나름대로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비교적 적은 제작비로 시청률을 보장받을 수 있는 통속극 제작에 관심을 기울였다.

결국 출생의 비밀, 불륜, 불치병, 복수 등 진부한 소재들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신선하지 않은 소재를 재미 있게 덧칠하려니 자극 수위는 당연 높아질 수 밖에 없었지만 어찌됐든 ‘막장’ 논란 속에서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막장 드라마의 최고봉은 SBS ‘유혹’ 시리즈다. 상반기 '아내의 유혹'과 최근 방영중인 ‘천사의 유혹’은 매회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큼 상상을 초월하는 복수극으로 시청자들의 뭇매와 관심을 동시에 받았다. 그나마 ‘아내의 유혹’에 한번 적응이 된 터인지 ‘천사의 유혹’은 나은 편에 속한다. 각각 아내와 남편의 복수극이란 설정만 다를 뿐 대부분의 스토리 구성이 똑 같은 두 작품은 ‘막장’이라는 비난에 대한 보상으로 시청률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KBS 1TV ‘다함께 차차차’는 ‘다양한 연령대가 즐길 수 있는 유쾌한 가족드라마’를 표방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불륜 코드와 난무하는 음모 술수로 진정한 가족애와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극중 강신욱(홍요섭) 회장의 기억상실증을 중심으로 한 지루한 이야기 전개에 짜증이 폭발한 시청자들은 “다양한 연령대가 욕하며 보도록 유도하는 불쾌한 가족드라마”라고 혹평을 하면서도 최근 30%가 넘는 시청률을 보여주고 있다.

주말드라마 시청률 1위를 독점하고 있는 KBS 2TV ‘수상한 삼형제’ 역시 막장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소문난 칠공주’ ‘조강지처클럽’을 집필한 문영남 작가의 후속작인만큼 살짝 두 작품을 섞어 놓았다는 비판까지 듣고 있다. 나쁜 남자 왕재수(고세원)의 양다리 연애 행각은 끝났지만 시어머니 전과자(이효춘)와 엄청난(도지원) 등의 밉상 캐릭터가 주도하는 극의 갈등은 도를 넘어섰다는 평가다.

그러나 이러한 ‘막장’이 현실적으로 우리 주변에서 전혀 없다고 할 수만은 없다. 웬만한 불륜과 반인륜적 범죄 등은 뉴스조차 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얼마나 현실에 있는 부분들을 희화적으로 표현했느냐의 문제일 뿐 이 역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자화상이다.


# 드라마도 ‘빈익빈 부익부’ – ‘선덕’, ‘솔약국’ ‘아이리스’

한편 올 한해 주중 안방극장을 점령한 MBC ‘선덕여왕’, KBS 2TV ‘아이리스’, ‘솔약국집 아들들’의 상대 프로그램들은 모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올해 국민드라마로 등극한 '선덕여왕'이 한때 5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는 동안 KBS 2TV ‘공주가 돌아왔다’와 ‘천하무적 이평강’은 한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연이어 고배를 마셨다. 이들의 전작인 ‘전설의 고향’도 10회 평균 5.1%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그에 앞서 방송된 ‘결혼 못하는 남자’ 역시 8%의 시청률로 막을 내리는 비운을 맛봤다. 지난 10월 첫 전파를 탄 SBS ‘천사의 유혹’은 ‘선덕여왕’을 피해 아예 9시대로 월화드라마를 옮기는 굴욕적인 파격 편성을 택했다.

KBS 2TV ‘솔약국집 아들들’이 시청률 40%를 돌파하는 동안 동 시간대 방송된 MBC ‘탐나는 도다’가 6.3%를 기록한 것 역시 같은 이치다. 제작비 200억 원이 투입된 대작 '아이리스' 또한 최고의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MBC ‘맨땅에 헤딩’과 ‘히어로’, SBS ‘미남이시네요’,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를 가볍게 눌렀다.

각 방송사들은 인기 드라마와의 경쟁을 피하려고 재방송 강화 등 다양한 편성 전략을 세워봤지만 심지어 이들 ‘대박’ 드라마의 재방송 시청률 보다 못한 쓴 맛을 보기도 했다.

이처럼 드라마의 뚜렷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케이블TV와 온라인 VOD 서비스 등 채널의 다양화가 심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즉, 굳이 꼭 봐야 할 최고의 드라마가 아니라면 나머지는 추후에 케이블TV나 온라인 다운로드를 통해 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각 방송사는 대놓고 ‘본방 사수’라는 용어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러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막대한 제작비가 투여된 대작이거나 오랜 준비를 거쳐 완벽한 기획력이 뒷받침된 드라마가 아니면 살아날 수 없다는 교훈을 안겼다. 또는 ‘막장’이거나. 어찌 보면 우리네 삶과 참 닮았다. 그래서 우리는 드라마 속에서 희망과 환상을 찾고, ‘막장’이라는 자극적인 내용을 보며 그보다 나은 우리네 현실을 자위하는 지도 모를 일이다.

조우영 기자 gilmong@tv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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