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드라마에서 현실이 보인다?

윤탱여팬 2009. 5. 12. 19:09

드라마에서 현실이 보인다?

수목드라마는 어느새 각 방송사의 진검승부장이 되어 버렸다. 4월 말에 방송 3사에서는 앞 다투어 새 수목드라마들을 선보였는데 이렇게 맞불을 놓는 시도 자체가 승부를 걸겠다는 의미이며, 대형 블록버스터급 드라마들이나, 특급 스타들이 연기 대결을 펼치는 시도들이 많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지금 방영되고 있는 세 드라마 역시 각 방송사의 화끈한 공격력들을 잘 보여준다. 먼저 MBC의 ‘신데렐라 맨’은 권상우라는 초대형 스타에 소녀시대를 매칭 시키고, 게다가 첨단 기법을 이용해서 두 명의 권상우까지 만들어 놓았다. 지금 당장은 시청률에서 가장 고전하고는 있지만, 일본을 비롯한 외국 시장에서는 가장 탐나는 상품이 될 수 있기에 투자한 것 이상의 가치는 보여줄 것이라 기대된다.
  

또 SBS의 시티 홀은, TV에서만은 세계적 스타가 부럽지 않은 김선아를 전면에 내세우고, 차승원과 추상미를 더했다. 예전이라면 셋 중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드라마를 짤 수 있었을 것이다. 거기다 극본은 김은숙이니 온에어의 영광을 다시 재현할 만도 하지 않은가? 조역들까지 신경 안 쓴 곳이 없다. 개인적으로 최일화, 염동헌, 류성현 등 연극 배우 출신의 알짜배기 조역들의 활약이 무한 기대되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KBS의 ‘그저 바라보다가’ 역시 캐스팅으로는 절대 밀리지 않는다. 황정민과 김아중이면 거의 40억 예산의 영화 캐스팅이다. 전미선, 이청아 역시 자신을 타이틀롤로 삼은 영화들을 필모그래피에 갖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조역이다. 정동환, 윤주상, 류태호, 조상건, 김광규 등 연극 무대로부터 영화에 이르기까지 자기 영역이 확실한 배우들이 뒤를 받치고 있으니 연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말 오랜만에 맛있는 연기를 보여주는 드라마가 나온 것이 아닌가. 게다가 ‘웬만하면 그들을 막을 수 없다’던 작가까지 포진하지 않았나.

그런데 더 재미난 것은 이들이 모두 우리 사회 현실을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심지어 공격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씨티 홀’과 ‘그저 바라보다가’는 기본 셋팅 자체가 일정한 공격을 수반하게끔 되어 있다. 공교롭게도 하나는 시 공무원 사회를 소재로 삼고 있고 다른 하나는 시장 선거를 주요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공통점까지 보여주면서 한국 관료 사회의 문제들과 정치판의 모순들을 제법 아프게 공격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시청자들이 다 알고 있었지만 드라마에서 구경하지는 못했던 부조리와 불합리가 전면에 드러나면서, 우리의 주인공들이 그로 인해 고생을 하고 있으니, 몰입은 따 놓은 당상이다. 이미 김선아의 투지에 몰입되고 김아중의 눈물에 홀릭 된 일부 고정 시청층은 한국 사회의 부조리들에 대해 마음 속에서나마 일전을 벌이고 있는 듯 하다. 이들의 현실감 있는 이야기들은 전체적으로 수목 드라마의 시청률 자체를 골고루 높이고 있다. 사실 어느 하나든 다른 시간대로 간다면 곧장 20%대를 확보하며 선두로 치고 나갈 법 하지 않은가?

우리 드라마가 막장과 허무에서 벗어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을 잘 반영한 소재와 기본이 갖춰진 이야기, 그리고 검증된 배우들의 연기이다. 그 중에서도 한국 드라마에 가장 부재했던 것이 현실을 잘 반영한 소재였다. 드라마는 늘 현실과 유리되어 있었고, 도피처를 제공하거나 스스로 마약의 역할을 하며, 때로는 비겁하게 노이즈 마케팅까지 동원해가면서 시청자들을 바보나 의처증 환자로 만들어 왔다. 물론 그건 결코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만의 책임은 아니었다. 그나마 코메디보다는 나은 편이었지만, 독재 정권에, 독점 자본에, 또 이익 집단들의 압력이나 심지어 내부 자율 조정(?)에 의해, 할 말을 담은 드라마가 나올 수없는 구조였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항상 원했다. 출생의 비밀이나 우연한 교통사고나 난데없는 불치병에 백마 탄 왕자가 기적처럼 나타나는 판타지가 아니라, 복지부동하는 얄미운 공무원이나 매번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정치꾼들,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우기는 졸부들, 거기에 빌붙는 일부 더러운 언론들, 혹은 그들이 모두 힘을 합해 만들어 놓은 음모와 함정을 뚫고 평범한 우리의 구동백이나 신미래, 오대산 같은 친구들이 소중한 꿈을 지켜나가는 이야기,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아직은 미약하지만 수목드라마에서 줄기차게 뿌려지고 있는 이 소중한 씨앗들이 계속 자라나 우리 드라마가 선호하는 이야기 트렌드를 확실히 바꿔놓을 그 날을 기대하면서, 수요일-목요일에는 일단 시간을 비워둬야 하겠다. 그런데 뭘 봐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