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

[세계타워] 정조의 화살처럼

윤탱여팬 2009. 12. 23. 18:32
[세계타워] 정조의 화살처럼
독선은 독약만큼이나 위험
“내탓이오” 나부터의 실천 중요
  • 우리나라의 수많은 제왕 중에서 활을 가장 잘 쏜 왕은 아마도 정조가 아닐까 싶다. 그의 활 솜씨는 태조 이성계를 능가할 정도였다.

    사도세자의 아들로 언제 정적에게 죽을지 몰라 잠조차 편히 자지 못했던 학자 군주 정조. 그는 자신의 울분을 달래면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젊은 시절부터 무예를 갈고닦았다고 한다.

    배연국 선임기자
    제위 17년을 맞은 초겨울 어느 날, 정조는 창덕궁 춘당대에 나가 시위를 당겼다. 화살이 과녁 중앙을 꿰뚫었음을 알리는 순기(巡旗)가 올라갔다. 벌써 40발째 화살이 연달아 명중했다. 옆에 있던 신하들이 그것을 기리는 고풍(古風·왕이 활쏘기를 하다가 맞히면 그 자리에 있는 신하들에게 상을 주던 일)을 해야 한다고 아뢰었다.

    그러자 정조는 “정 그렇다면 연속해서 다 맞히면 그때 가서 고풍을 청하라”고 말했다. 그런 뒤 다시 9발이 과녁에 꽂혔다. 주위 신하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제 10순(50발)의 화살 중 남은 화살은 단 한 발. 그런데 정조는 갑자기 활을 내려놓으면서 소리쳤다.

    “다 쏘는 것은 옳지 않다!” 가득 채우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일이라는 게 평소 그의 철학이었다.
  • 정조는 그의 문집인 홍재전서에 ‘유소불위(有所不爲)’란 말을 남겼다. 사람은 하지 않는 바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자기 힘이 있다고 무소불위의 권력이나 돈 따위를 마음대로 휘둘러선 안 된다는 경구다.

    정조는 그가 쏜 49발의 화살처럼 49세의 일기로 세상을 떴다. 삶은 길지 않았지만 아름다운 가르침은 오늘에도 그윽한 향기로 남는다.

    배연국 선임기자